음식의 이름이 '해 질 무렵', '흔들리며 피는 꽃', '스며드는 것'과 같다면 먹어보기 전에 이 음식들이 어떤 맛으로 다가올지 상상하는 재미도 더해지지 않을까?
해외파병은 단순히 소말리아 해역에 있는 해적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여러 가지 정치 외교적인 목적 또한 같이 포함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해군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우리나라 함선이 없을 때는 외국함선들의 도움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항하게 되는 나라 중 몇 곳에서는 함상 만찬과 함께 특별한 행사를 마련한다.
이 때는 모든 승조원이 매우 바빠지는 시기인데, 왜냐하면 외부인사분들이 우리 배를 방문하므로 깨끗한 군함의 모습으로 정돈하고(군필자들은 이게 꽤나 힘들다는 걸 알 것이다!),행사를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꺼내어 셋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있는 만찬을 약 30가지 정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리병들은 2주 전부터 무슨 음식을, 어떻게 조리할 것이며,어느 배치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철저하게 계획한다. 그래야 지만 단 몇 시간 만에 사람들에게 30종의 음식을 빠지는 것 없이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리병의 숙명은 음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식에 실패하면 패잔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동안 결혼식장에서, 혹은 어느 행사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골라서 먹을 때는 몰랐었다. 빠른 시간 안에 푸짐하게 음식이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과 준비가 철저하게 있어야만 가능한지를. 그래서 예민해지고 힘들기만 할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같이 일하는 조리병 동료들이 너무 재밌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친구들은 내가 지금껏 태어나서 봐온 친구들 중에 가장 '직관력'이 뛰어난 친구였다. 나처럼 일반고등학교에서 문과를 나오고, 대학에서 인문학 쪽을 전공한 사람들은 공부하면서 늘 수많은 '먹물'(활자로 세상을 배운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즉 언어로 환원되는 것들을 통해 이해하고 통찰을 하지만, 조리병 친구들은 훨씬 직관적으로 깨닫고, 흥을 느끼고 성장하는 것을 늘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일하는 도중에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랩을 하며 부추전이나 김치전을 부치는 것은 예삿일이다. 스파게티면으로 펜싱 싸움(!)을 하기도 하고, 동그랗게 말려 있는 철수세미를 가지고 나선환(일본 만화 나루토에서 나오는 기술 중 하나)을 만들어 놀기도 한다.
그리고 라면박스를 이용해 젠가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소품들을 이용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는 친구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하다가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이런 시선들이 내게는 너무 신선했다.
음식을 할 때 간을 보고 그걸 설명해주는 것도 독특했는데,대량 취사에서 조리병들은 절대 소금 두 국자, 간장 두 스푼 이런 방식을 이용하지 않았다. 한 친구는 무침을 하기 위해 간장을 얼마나 넣으면 좋을지 물어보는 내게 '또로로로록 똑 똑' 만큼 넣으면 딱 맞는다고 해줬다.(이 무슨 직관인가!)
모든 걸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개성을 한 껏 담은 음식들을 만들 때는 음식의 이름부터가 남다를 것 같아서 시 제목같이 음식 이름을 함께 작명해보기도 했다. 음식의 이름이 '해 질 무렵', '흔들리며 피는 꽃', '스며드는 것'과 같다면 먹어보기 전에 이 음식들이 어떤 맛으로 다가올지 상상하는 재미도 더해지지 않을까? 그들과의 유머러스한 대화는 일상을 추억으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동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겪어야 하는 것들은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즐거움과 웃음도 함께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들을 떠올리면 만월의 밤 함상 만찬을 준비하며 함께 웃었던 그 기억이 스며들어온다.
실제 함상 만찬시에는 소불고기, 소세지 같은 경우는 그자리에서 구워서 제공한다. 여군분과 조리병들.
조리병들은 끼가 많아서 그 유머러스함을 늘 배웠다.